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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서론: 1절 - 18절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다음과 같이소개하고 있다. 예수님은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을 보여주신 분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분(God-Man)의 말씀과 행동이셨다.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절의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요 1:14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기 때문이며, 계 19:13에도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계 19:13)고 말씀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인격과 말씀과 행동으로서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려 주셨고,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한 것이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말씀은, “말씀” 즉 예수님은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를 나누며 영원 전부터 살아 계셨다는 뜻으로, 예수님이 영원하신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씀은 “말씀”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준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영원 전부터 함께 계셨던 영원하신 분이시다. 따라서 영원하신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며, 예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특징(속성)인 영원성을 지니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하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영원한 분이시므로, 영원하신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다. 즉 본질상 하나님이시다.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이신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예수님은 어떤 시점에 갑자기 나타나신 분이 아니다. 또한 예수님은 어떤 시점부터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작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아들, 말씀)은 하나님(아버지)와 영원 전부터 사랑의 교제 속에 계셨다. 하나님(아버지)와 예수님(아들)은 두 분 다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이 두 분이 계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삼위일체의 가르침을 발견하게 된다.

삼위일체: 어떤 점에서 보면 이 진리는 사람들이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가르침이다(In one sense the doctrine of Trinity is a mystery that we will never be able to understand fully).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는 있다. 첫째, 하나님은 세 분의 인격이시다(God is three persons). 둘째, 각 분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다(Each person is fully God). 셋째,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There is one God).

더 자세히 설명해 보면, 첫째, 하나님은 세 분의 인격이시라고 말할 때, 세 분은 하나님 아버지(성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성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세 분의 인격이시라는 말은 다음을 뜻한다. 즉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다. 성부는 성령이 아니시다. 또한 성자는 성령이 아니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구별된 다른 분이시다. 둘째, “각 분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은 성부는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성령도 완전한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셋째,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말은 삼위의 하나님, 즉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목적과 생각에 있어서도 하나이실 뿐 아니라, 본질(essence-본래 가지고 있는 성질), 즉 근본적인 본성 혹은 본질(essential nature)에 있어서 하나이시라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God is only one being). 세 분의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다(There are not three Gods). 하나님은 오직 한 분만 존재하신다 (There is only one God).

< 삼위일체에 관한 설명은 나중에 더 상세하게

한 단원으로 다룰 예정임>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왜 만물은 존재하는가? 만물이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만물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철학자들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곤 한다. 그런데 성경은 이 질문들에 대하여 명확한 답을 준다. 즉 만물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만물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말씀,” 즉 예수님은 창조의 역사를 행하신 분이다 (참조. 고전 8:6; 골 1:16; 히 1:2).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사람의 영적인 생명과 육적인 생명은 예수님으로부터 온다 (참조. 요 5:26; 6:57; 10:10; 11:25; 14:6).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신다. 즉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신다. 마태는 이사야서 9:2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구원을 빛이 비치는 것에 비유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6-17)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또는 이기지 못하더라

여기 “깨닫지 못하더라 또는 이기지 못하더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탈람바노”를 번역한 것으로서, “깨닫지 못하다” 혹은 “이기지 못하다”라는 두 가지 뜻이 다 들어 있다. 두 가지 중 “이기지 못하다”라는 뜻을 사용해서 해석을 한다면 다음과 같다. 즉 사탄과 사탄에게 지배를 받는 자들은 빛을 거부하고 저항하겠지만, 빛의 능력에 대항할 수가 없다.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예수님 앞에 전령으로 온 요한은 하나님이 보내신 중요한 사람으로서 특별한 사명을 띄고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능력을 받은 사람이다.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요한을 증인으로 보내셨다. 요한을 보내신 이유는 사람들이 요한이 예수님에 관하여 증언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믿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증인으로 부르시어 예수님에 관하여 증언하게 하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침례 요한은 위대한 사람이었으나 빛은 아니었다. 침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한 내용과 활동을 마태와 누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마 3:11-“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베푸실 것이요” 눅 1: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불순종하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죄와 심판 및 구원에 관한 진리를 깨우쳐 주신다. 요 16:8은 세상 사람을 향한 예수님의 사역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세상”이란 말은 헬라어 “코스모스”라는 말을 번역해 놓은 것인데, “코스모스”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예를 들면, 지구나 우주와 같은 자연적 환경을 뜻하기도 하고, 혹은 균형 잡힌 배열(arrangement)이나 질서(order)나 조직(organization)을 뜻하기도 하며, 혹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룬 사회를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 “세상”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사탄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이룬 사회를 뜻한다(요 14:30은 사탄을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말함).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사람들 가운데 오셨지만, 사람들은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를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알지 못한 이유는 죄로 인하여 무지하고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요 12:37).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예수님은 자기 땅, 즉 이스라엘에 오셨지만 유대인들은 전체적으로 예수님을 거부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구주로서 영접하지 않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했다. 오래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유대인들이 전체적으로 예수님을 거부할 것을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 .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사 53:1,3)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전체적으로 거부했지만, 모든 유대인이 다 예수님을 거절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헬라어 엑수시아를 번역한 말로서 특권, 권위, 권리를 의미함)를 받을 수 있다.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전체적으로 거부했지만, 모든 유대인이 다 예수님을 거절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특권, 권위, 권리)를 받을 수 있다.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부여 받는 새 출생(New birth)은 혈통을 통해 자연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자녀를 얻고자 하는 사람의 자연적인 소원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새 출생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인 것이다. 사람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만, 새 출생 (혹은 중생)의 원인은 성령의 초자연적이며 신비한 역사인 것이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시며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셨다. 예수님은 단순히 사람의 모습만을 취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셨다. 달리 말하면 예수님의 신적인 본질(essence)에 사람의 본질이 더해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신적인 본질은 사람이 되시면서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육신이 되어”라는 말씀은 예수님은 신적인 본질에 더해서 사람의 본질도 소유하셨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예수님이 “육신”이 되셨다는 것은 사람과 같이 죄가 많은 존재나 약한 존재가 되셨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사람의 본질(예를 들면, 사람의 영혼과 몸)을 소유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거하셨다”는 말씀은 ‘성막’(tabernacle)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되었다. 즉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성막에 거하셨던 것처럼(출 40:34) 예수님이 사람들 가운데 거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영광”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과 기적과 죽음과 부활에서 볼 수 있는 영광을 말한다. “아버지의 독생자”라는 말씀은 독특한 뜻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즉 독생자이시지만, 동시에 영원하신 분이시며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essence)을 소유하신 분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와는 전적으로 다른 신분을 소유하고 계신 “아버지의 독생자”이시다.

은혜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긍휼과 자비를 뜻한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셔서 사람들 가운데 거하시는 것은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영원불변한 진리인 것이다.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육신적으로 볼 때 요한은 예수님보다 더 일찍 태어났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존재하고 계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예수님이 자신보다 더 높은 분이라고 증언한다.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의 은혜의 충만함으로부터 평생 지속되는 은혜, 더 많은 은혜, 더 깊은 은혜, 더 충만한 은혜를 받게 된다.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사람의 죄를 깨닫게 하며 정죄하는 율법은 모세로 인하여 주어졌지만, 사람의 죄를 사하며 죄인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하나님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딤전 1:17은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했다. 또한 딤전 6:16은 하나님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라”고 말씀했다. 이사야가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사 1:6)”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본질을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격화한 모습, 즉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나타내어 주신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다.

“독생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거하는 또 다른 표현이다. “아버지 품 속에 있는”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음을 말하는데, 이는 1절의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라는 말씀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분의 삶과 역사를 통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본질을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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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 2011 5:0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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